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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VIEW/고전 & 현대 문학

다섯 번째 감각 - 김보영 / 줄거리 & 명대사 & 후기

by 책 읽는 꿀벌 2023. 1. 8.

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오랜만에 SF 단편 소설을 읽어 봤습니다. 예전에는 단편 소설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바빠서 그런지 이런 모음집이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더라구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틈나는 시간마다 조금씩 읽기에 좋았던 책입니다.


<책소개>

저서 : 다섯번째 감각
저자 : 김보영
발행일 : 2022-02-20
페이지 : 440

 

 

<줄거리>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 은하의 중심에 있는 별, 밤이 없는 곳에 사는 사람들 중 잠을 자야만 하는 '기면증'을 가진 사람의 편지

땅 밑에 - 원기둥 속에 사는 사람들 중 미지의 공간 '지하'로 내려가는 사람 (하강자)가 땅의 끝 우주를 발견하는 이야기

촉각의 경험 - 뇌파 공유로 클론의 꿈에 접속해 태초의 인간이 가진 정보를 알고자 한 실험 결과

다섯 번째 감각 - 인간에게 청각이 사라진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

우수한 유전자 - 유전자 판별을 통해 태어난 이들의 후손이 살아가는 스카이 돔과 그 바깥 키바에 사는 이들의 간극

마지막 늑대 - 용의 등장으로 반려동물로 살아가는 인간과 용에 저항하는 인간(늑대)들의 이야기

스크립터 - 서버 종료를 앞둔 가상현실게임 속의 마지막 플레이어를 설득하기 위한 게임 제작사와 플레이어

거울애 - 공생증 (자기대상 분리장애)를 가진 소희를 맡게 된 강태호 

노인과 소년 - 사제의 회고, 같은 처지이지만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지는 사람의 모습

몽중몽 - 매일 태어나고 사라지는 꿈 그 자체가 사고를 가진 존재라면

 

 

<명대사>

나 자신에 관한 문제는 내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밖에 없다. 너는 자신을 닮은 사람들로 둘러싸인 세상에 살고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세계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에겐 스승도 제자도 없으며 동료도 소속할 곳도 없다. 일생 스스로를 가르치고 스스로 공부하며, 자신에게 맞는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너는 나을 수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싸우며 살아야 한다. (중략) 내 입장에서 '낫는다'는 것은 나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한다.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들과 같은 사람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니 아무 상관도 없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내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우리가 사는 세계는 거대한 원기둥 모양이며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고속으로 회전한다. 덕분에 사람은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살 수 있다. 절벽에서 사다리가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고, 지표에서 끊임없이 바람이 부는 것도 원심력 탓이다. 땅이 회전하면서 공기도 같이 회전하니까. 지하로 내려갈수록 중력이 커지는 이유도, 회전축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원심력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아는 세상의 모습이다.

학자들은 하늘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땅 밑에도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말했다. 내려갈수록 점점 중력이 커진다면, 어느 이상 내려가면 결국 중력이 너무 커져서 사람은 물론 그 무엇도 아래에선 살 수 없을거라고. 중력이 모든 것을 찌부러트리고 말 거라고. 그것이 세상의 끝이요 한계이며, 인간이 내려갈 수 있는 하한선이라고. 하지만 지금 모든 상식이 뒤집어지고 있었다.

 

"그 짓을 내 의지로 했는지, 아니면 나와 연결되어 있었던 클론의 의지로 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반쯤은 그 녀석의 감정이 시켰다 싶어요. 그리고......"

유시헌은 피곤한 듯 목소리를 삭였다가 조용히 내뱉었다.

"그는 나와 접촉했어요."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는 말처럼 들렸다. 천지가 그때 개벽했다든가, 세상에 음악이 처음 태어났다든가, 천재적인 화가가 마지막 작품의 마지막 점을 그려 넣고 수명이 다해 죽었다든가 하는 말과 비슷하게 들렸다.

"그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었어요."

 

'당신은 세계의 일부만을 인식하고 있는 거예요.'

'숨겨져 있던 이 세계의 단면.'

'오랫동안 인류가 잊고 있었던 제5의 감각.'

소리가 길을 인도해줄 거예요. 귀를 기울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당신 주위는 소리로 가득 차 있어요.

 

선배님은 평등이란 서로 같아지는 것에서가 아니라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것에서 온다고 하셨지요.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은 획일이 아니라 조화고, 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키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를 보완하는 것이라고. 그런데도 역사는 언제나 어느 한 부분을 배제하고 축소하고, '더 낫거나' '더 옳다'고 믿는 것을 과다하게 확장하는 데에만 주력해왔다고요. 비대하게 기울어진 가치관은 결국 쇠퇴를 가져오고, 뒤를 잇는 문명은 다시 다른 쪽 저울에 추를 과다하게 올려놓는 모순을 반복해왔다고요. 그러므로 우리의 눈에 아무리 바보스러워 보이더라도, 그들의 존재 역시 이 사회에 필요하며, 그들의 생활방식 역시 인정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중략)

그들은 멀리 이동하기 위해서는 자동차라는 것을 타야하고, 우주를 비행하기 위해서는 우주선이라는 것을 타야 합니다. (...) 여전히 물질적인 쾌락에 집착하고 있어 호화로운 집이나 반짝이는 돌 같은 것에 탐닉하고, 그것을 위해 인생을 낭비하며 즐거워합니다. 마음의 눈을 뜨지 못했으므로 작은 물건을 보려면 현미경을 써야 하고 먼 것을 보려면 망원경을 써야 합니다. 마음의 귀가 열리지 않았으므로 여전히 성대를 움직이는 대화법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말하는 법'조차 배우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그들을 불쌍히 여겨왔지만, 그리고 그들에게 인류의 위대한 진보에 관해 가르쳐보려고 노력해왔지만, 이제는 선배님들의 말씀을 믿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들이 '행복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집이 내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그의 집 벽 가득히 붉은 노을과 짙푸른 밤하늘을 그려놓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내가 단지 매일 냄새를 묻히며 영역표시를 하고 있다고만 생각한다. 내가 현관문에 그의 초상을 그렸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그는 자신의 몸이 아름다운 비취빛으로 빛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눈동자 또한 그렇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하지만 또 어찌 알겠는가? 그의 하늘에는 다른 것이 떠 있을지. 그들의 귀에는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리며 별들이 공명하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릴지. 지구의 자기장이 흐름을 바꾸는 소리가 들리며 우주선과 자외선이 지표로 쏟아지는 모습이 보일지. 인류가 수만 년의 역사 동안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일상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을지. 

 

"네가 질문하면 그는 침묵하겠지. 말없이 너를 바라보기만 하겠지. 너는 그 침묵에 의미를 부여할 거고 네가 원하는 답을 그 침묵 속에서 듣겠지. 답은 네 머릿속에 있었던 것인데, 너는 그 답을 그에게서 보았다고 생각할거야. 너는 그에게서 네가 원하는 말을 듣고 네가 듣고 싶은 답을 얻을거야. 너는 혼자 했던 일방적인 대화 속에서도 소통을 상상하고, 이유가 없는 것의 이유를 해석하고, 논리가 없는 것의 논리를 보겠지. 그의 무표정에서 너는 무수한 감정의 파편을 보겠지. 그 감정이 네 안에 있었던 것인 줄도 모르고."

 

불현듯 내 마음을 이처럼 생생하게 알았던 적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그때 계속되던 질문의 답이 홀연히 찾아왔다.

- 어째서 나지?

아. 아아..... 나를 위해서기도 했구나......

그때 소희의 눈에서 슬픈 눈빛은 어느덧 사라지고 환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소희의 얼굴에서 본 것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미소였다. 내가 그 미소의 의미를 전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나타난 왕은 그의 마음을 충실히 따라 살았으므로 영광스러운 자리에 도달했습니다. 그는 용기 있는 전사이며 또한 위대한 왕이며, 그의 일생이 타인의 귀감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두번째 나타난 왕은 자신의 진실한 마음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것이 아닌 욕망을 따라 살았으니 남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얻었으면서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처음에 나타난 노인은 자신의 마음에 의하여 살지 않았으므로 게으른 거지에 불과하나, 두 번째 노인은 자신의 의지로 안빈낙도의 삶을 택했으니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높은 자리에 서는 것과 낮은 자리에 서는 것에 모두 다른 가치의 성스러움이 있습니다."

 

나는 연속으로 이어지는 꿈을 꾸었다. 그건 사물이 의인화되고 사람이 사물화된 세상의 꿈이었다. 추상이 형상화되고 형상이 추상화된 세상이었다. 내 일부이자 친구인 '해'는 이글거리며 불타는 거대한 원형물체로 존재했고 그의 거울상이자 동생인 '달'은 차갑게 얼어붙은 비슷한 모양의 공으로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내 인격은 조각조각 흩어져 무수한 생물로 형상화하여 지구라는 한 행성에 들어차 살아갔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고 전생과 후생을 알지 못했다.

내가 누구인가. 내가 만들어낸 기호의 조합으로 표시되는 불확실한 상징체계를 써서 내 이름을 발음하자면, 내 이름은 꿈이다.

 

 

<마무리>

우리는 기존에 없던 새로움을 창조해내는 것만을 상상력이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것을 비틀어 내는 것이야말로 신선한 충격과 경악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사라진 세상에서 우리가 상식이라 믿었던 것들이 비이성적이고 비정상적이라 여겨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눈 앞에 보이는 현상은 받아들이는 주체의 판단에 의해 존재되어질 뿐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또한 그 어떤 진실도 진정한 의미의 진실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책장을 덮고 난 이후에도 그 여운이 남아 한동안 곱씹어 봤다. 나에게 주어진 '평범함'과 '특별함'이 모두 지극히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불안하면서도 기이한 고양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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