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친구의 추천을 받아 정세랑 작가님의 소설을 선택했습니다.
가벼운 SF요소와 로맨스가 섞여서 부담 없이 읽기 좋은 책이었습니다.
<책소개>
저서 : 지구에서 한아뿐
저자 : 정세랑
발행일 : 2019.07.31
페이지 : 216 쪽
등장인물 : 한아, 경민, 유리, 경민(엑스)
정규, 주영, 아폴로
<줄거리>
한아는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패스트 패션을 뒤로하고 저탄소 생활을 하며 리폼 가게를 운영한다. 동양화를 전공한 친구 유리와 함께 가게에서 지내며 평화로운 날을 보내던 한아는 캐나다로 유성우를 보러 간 남자친구 경민이 사고를 겪고 귀국한 후 이상한 일을 겪기 시작한다. 경민을 의심하게 된 한아는 결국 국정원에 간첩 신고까지 하게 되지만 큰 소득을 보진 못한다. 동시에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아폴로도 캐나다의 유성우를 보러 갔다가 사고에 휘말려 실종된다. 소식을 들은 그의 1호 팬인 주영은 아폴로를 찾기 위해 조사를 시작한다. 초록색 빛이라는 단서를 가지고 경민에게까지 접근한 주영은 그의 집에 무단침입하기까지 이르고 주인 없는 집에서 국정원 요원 정규와 마주친다.
돌아온 경민이 묘하게 달라진 것을 눈치 채고 두려워 하던 한아는 경민에게 원래 경민이 우주로 떠났고, 현재의 경민은 자신을 만나기 위해 우주를 건너 온 외계인이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충격과 배신감도 잠시 자신과 결혼하지 못하면 지구를 떠나야할 수도 있다는 경민의 말에 마음이 약해진 한아는 경민과 약혼을 하기로 한다. 큰 빚을 지고 지구로 온 경민은 우주적 차원의 심부름을 하게 되는데 아폴로의 팬 주영에게 편도 티켓을 전해주는 일도 맡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경민과 한아는 주영과 정규를 보게 되고 오해를 푼 이후 주영은 티켓을 받아 우주로 떠난다.
경민과 한아는 동거를 하면서 경민의 망원경으로 우주를 보기도 하고 위험하지 않은 심부름을 함께 하면서 빚을 갚아 나간다. 시간이 흘러 둘은 결혼식을 하고 청소년 쉼터를 비롯해 친환경 기업을 운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이때 원래의 경민(엑스)가 죽기 직전의 몸 상태로 집 앞에 나타난다. 경민은 그런 엑스의 임종을 한아가 지키길 바라면서 잠시 떠나 있는다. 엑스가 죽고 돌아오지 않는 경민을 기다리면서 한아는 힘들어한다. 이후 돌아온 경민과 다시 한 번 사랑을 확인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명대사&구절>
"이해해, 한다니까? 그래도 같이 간다면 정말 좋을 텐데."
그렇게 말하지만 넌 이해 못해. 한아는 속으로 말했고 속으로 말하는 일이 너무 늘어난 것과 가장 많이 쓰는 접속 부사가 '하지만'이 된 것이 신경쓰였다.
- 2 中 경민(X) & 한아 -
"왜 그러고 사니?"
주영이 아폴로를 발견하고 나서 가장 자주 들은 말이었다. 그 말을 정말이지 다채로운 톤으로 들어왔다. 영하 40도의 무시, 영상 23도의 염려, 70도의 흐느낌, 112도의 분노로.
사람들은 왜 너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느냐고 묻는다. 끝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절대 명제, '누구나 하나의 세계를 이룰 수 있다'는 역사상 가장 오래 되풀이된 거짓말 중 하나일 거라고 주영은 생각했다. 세계를 만들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탁월하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 기생할 수 밖에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똑같이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거인이 휘저어 만든 큰 흐름에 멍한 얼굴로 휩쓸리다가 길지 않은 수명을 다 보내는 게 대개의 인생이란 걸 주영은 어째선지 아주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중략)
어차피 다른 이의 세계에 무력하게 휩쓸리고 포함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아폴로의 그 다시없이 아름다운 세계에 뛰어들어 살겠다. 그 세계만이 의지로 선택한 유일한 세계가 되도록 하겠다......
- 6 中 주영 -
"(생략) 어찌되었건 내가 본 너는 엄청나게 일관된 사람으로, 혼자 엔트로피와 싸우고 있는 거 같았어. 파괴적인 종족으로 태어났지만 그 본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었지. 너는 비 오는 날 보도블록에 올라온 지렁이를 조심히 화단으로 옮겨주었고,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고래를 형제자매로 생각했어. 땅 위의 작은 생물과 물속의 커다란 생물까지 너와 이어지지 않은 개체는 없다는 걸, 넌 우주를 모르고 지구 위에서도 아주 좁은 곳에 머물고 있었는데도 이해하고 있었어. 나는 너의 그 선험적 이해를 이해할 수 없었어. 인간이 인간과 인간 아닌 모든 것들을 끊임없이 죽이고 또 죽이는 이 끔찍한 행성에서, 어떻게 전체의 특성을 닮지 않는 걸까. 너는 우주를 전혀 모르는데, 어떻게 우주를 넘어서는 걸까. 너는 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생략)"
- 21 中 경민 -
"자, 상이야."
"상?"
경민이 솜사탕의 촉감에 놀라 하며 물었다. 감각 변환기가 아주 고장나진 않은 모양이었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메슥거려 하며 수고스럽게 와줬으니까."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솜사탕을 떼어먹고는 경민이 아, 하고 작은 신음 소리를 냈다.
"어때?"
"상상했던 것보다 더 좋아."
"그치?"
"이거 말고 너."
지나치게 달다고, 뭐라고 쏘아주려다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놀랍도록 직선적인 외계인이 그렇게 싫지 않다고 생각했다.
- 27 中 한아 & 경민 -
흥미로운 것은 경민의 가족들도, 대단한 우정을 과시하던 친구들도 경민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한아는 그 부분에서 솔직히 섬뜩함마저 느꼈다. 완전히 태양계 밖으로 사라졌는데, 전혀 다른 존재가 그 자리를 대신했는데 알아차린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니. 원래의 경민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
(중략)
나 때문이 아니었어. 날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던 거야. 다만 오로지 그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일이었던 거지. 질량과 질감이 다른 다양한 관계들을 혼자 다 대신할 수는 없었어. 역부족도 그런 역부족이 없었던 거야.
- 30 中 한아 -
"경민아."
한아는 익숙한 이름을 불렀지만 부를 때 이름의 주인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한아에게 경민이란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처럼 여겨졌다. 아주 특별한 사랑을 이르는 말.
- 40 中 한아 -
언제나 너야. 널 만나기 전에도 너였어. 자연스레 전이된 마음이라고 생각해왔었는데, 틀렸어. 이건 아주 온전하고 새롭고 다른 거야. 그러니까 너야. 앞으로도 영원히 너일 거야...... 한아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채 말하지 못했고 물론 경민은 그럼에도 모두 알아들었다.
- 44 中 -
<마무리>
외계인과의 사랑이라는 SF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잔잔하게 이야기가 진행되는 점이 거부감 없이 읽기 좋았다. 특히 우주적 관점에서 바라본 지구가 얼마나 불안하고 위험한 행성인지 알게 해주는 묘사들이 신선했다. 3000년 간 평화가 지속돼야 우주 왕복 티켓이 주어진다는 점이나 탄소대사를 하지 않는 생명에게는 지구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관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공동체 속에서 그것에 물들지 않기가 얼마나 힘든 지, 그리고 그걸 지켜낼 때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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