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오랜만에 판타지가 없는 장편소설을 읽어 봤습니다.
3부작으로 이루어진 베어타운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입니다.
하키에 관한 스포츠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고립된 집단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맹목적인 희망과 욕망, 확고한 서열이 존재하는 베어타운의 이야기를 읽으며 현시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책소개>
저서 : 베어타운
저자 : 프레드릭 배크만
발행일 : 2018-04-17
페이지 : 572p
등장인물 : 마야, 페테르(마야의 아빠/ 하키팀 단장), 미라(마야의 엄마/ 변호사), 레오(마야의 남동생), 아나(마야의 단짝친구)
케빈 에르달, 벤야민(벤이), 아맛, 빌리암 뤼트, 보보, 필리프, 다비드, 수네
다비드(청소년팀 코치), 수네(A팀 코치), 라모나(술집 펠센의 주인), 프락 등
<줄거리>
베어타운은 쇠락해가는 마을로 다가오는 전국 청소년 하키팀의 시합에 마을의 희망을 걸고 있다. 베어타운팀이 준결승과 결승을 거쳐 우승에 이른다면 시의회와 후원자들이 마을에 관심을 가지고 전문 아이스하키 학교를 설립할 것이라고 비공식적으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추위와 숲 밖에 없는 척박한 베어타운에서 하키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한 스포츠 그 이상이자 정체성이다.
베어타운 청소년팀의 에이스 케빈은 완벽한 집안과 실력을 갖춘 베어타운의 스타로 준결승전이 끝난 후의 축하파티에 마야를 초대한다. 마야는 2층을 구경시켜준다는 케빈의 손에 이끌려 케빈의 방으로 따라간다. 거부하는 마야를 제압해 강제로 성관계를 하던 케빈은 마야를 찾아 들어온 아맛에 의해 방해받고 이 틈을 타 마야는 도망친다. 두려움에 떨던 마야는 단짝친구 아나에게 이 사실을 말하게 되고 아나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며 분노한다. 결국 일주일 후 가족에게 사실을 말하고 케빈은 청소년 결승전 원정을 떠나기 직전 경찰조사를 위해 체포된다. 케빈 없이 결승전을 치른 베어타운 팀은 연장전 끝에 결국 패배하고 만다.
결승전 당일에 구속을 당한 케빈을 두고 베어타운은 떠들석해진다. 후원자, 하키팀, 마을 주민들 모두 케빈이 그럴리 없다고 부정한다. 마야는 순식간에 학교에서 공공의 적이 되고 페테르 또한 구단에서 사임할 위기에 놓인다. 아맛의 증언으로 페테르는 단장의 자리를 지키지만 케빈을 포함한 베어타운 청소년팀 유망주 및 코치는 모두 헤드팀으로 이동한다. 미라의 로펌이 가세했음에도 증거부족으로 케빈은 무죄를 선언 받는다.
다음 날 새벽, 마야는 아나의 집에서 훔친 총과 실탄을 가지고 케빈의 조깅을 지켜본다. 케빈에게 똑같이 어둠의 공포를 돌려준 마야는 집으로 돌아가 소송을 포기한다. 10년 후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를 조망하며 1편은 끝난다.
<명대사&구절>
그는 언젠가 엄마를 여기서 탈출시킬 것이다. 그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다. 항상 수입을 더하고 거기서 지출을 빼가며 암산하는 습관에서 언젠가 벗어날 것이다. 돈이 바닥날 수도 있는 집에서 사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몇 살 때 그 사실을 깨달았는가도 중요하다. (중략)
거금은 필요없다. 단 하룻밤만이라도 침대에 누워서 암산을 하지 않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 3장 中 아맛 -
모든 조직이 다들 자기들은 문화를 창조하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가 진심으로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승리하는 문화뿐이다. 수네도 알다시피 모든 세상이 마찬가지지만 소규모 공동체에서는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는 승자를 사랑한다. 딱히 호감이 가는 부류가 아니더라도 그렇다. 승자들은 대개 강박적이고 이기적이며 배려심이 없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을 용서한다. 이기기만 하면 그들을 좋아한다.
- 6장 中 -
어른이면 누구나 완전히 진이 빠진 것처럼 느껴지는 날들을 겪는다. 뭐하러 그 많은 시간을 들여서 싸웠는지 알 수 없을 때, 현실과 일상의 근심에 압도당할 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그렇다. 놀라운 사실이 있다면 우리가 무너지지 않고, 그런 날들을 생각보다 더 많이 견딜 수 있다는 것이다. 끔찍한 사실이 있다면 얼마나 더 많이 견딜 수 있을지 정확하게는 모른다는 것이다.
- 9장 中 -
변호사, 단장의 아내, 하키맘. 이 세 가지 모두를 그녀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늘도 알고 땅도 알 테지만 가끔 그녀는 이동하던 도중에 숲속에 차를 세우고 어둠 속에 앉아서 눈물을 흘린다. 그럴 때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자식의 뺨에 묻은 눈물을 닦아주며 "그러게 사는게 어렵다잖니"라고 속삭였던 어머니. 아이를 낳으면 너무 작은 담요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고 덮어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추워서 바들바들 떠는 아이가 생긴다.
- 14장 中 미라 -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똑같이 걱정하는 결정적인 시기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고 있다. 십대는 유년기를 거치고 서로가 동등해지는 짧은 시기다. 이후에는 추가 기울어서 부모가 마야를 걱정하기 보다 마야가 부모를 더 많이 걱정하는 나이가 될 것이다. 조만간 마야가 미라의 귀여운 딸이 아니라 미라가 마야의 귀여운 엄마가 될 것이다. 아이를 놓아주려면 많은 게 필요하지 않다. 모든 게 필요하다.
- 19장 中 -
인간은 군집의 동물이라는 발상이 워낙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우리들 대다수가 단체 생활에 젬병이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우리들 대다수가 협동을 모르고, 이기적이며, 무엇보다도 남들이 싫어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되뇐다. '나는 훌륭한 팀 플레이어'라고. 거기에 따르는 대가는 치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스스로 그렇게 믿을 때까지 계속 되뇐다.
- 27장 中 페테르 -
그들은 서로 손을 잡는다. 나란히 앉아서 수면제 숫자를 세고, 몇 개를 먹으면 목숨을 끊을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게 지금과 달랐다. 그때가 어제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 28장 中 마야 & 아나 -
아나는 옆집 할아버지를 벽에 붙여놓고 그 아이들이 앉아서 실없는 농담 따먹기를 하는 로커룸이 그들을 보존하는 깡통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 그 때문에 더디 성숙하고, 일부는 심지어 그 안에서 썩는다고 말이다. (중략) 이 마을의 문제는 어떤 남자아이가 어떤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수준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그 아이가 그런 짓을 하지 않은 척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남자아이들까지 그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게 된다는 것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으니 그럴 수밖에. 아나는 지붕 위로 올라가서 외치고 싶다. "당신들은 마야에 대해 쥐똥만큼도 관심도 없지? 케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 왜냐하면 걔들은 당신들한테 인간이 아니라 그냥 값나가는 물건이니까. 그리고 케빈이 마야보다 몸값이 훨씬 비싸고!"
- 41장 中 아나 -
<마무리>
다양한 등장인물만큼이나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대부분의 소설 속 등장인물은 중요서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그 중요도가 달라진다. 중요도가 낮은 인물은 어쩔 수 없이 캐릭터의 다양성이나 서사를 보여주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베어타운은 한 명 한 명을 세심하게 조명하려고 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었는지 알려주고, 그렇기 때문에 따라오는 성취감이 얼마나 벅찬지를 서술한다. 그렇기 때문에 눈과 숲 밖에 없는 차가운 베어타운의 이야기가 따뜻하게 가슴에 와닿는지도 모른다.
각 인물들의 상황과 그에 따른 고민을 모두 설득력 있게 풀어낸다는건 쉽지 않은 일이다. 프레드릭 베크만은 감정의 변화에 따른 생각과 행동 양식을 섬세하게 묘사해서 몰입하기 쉬웠다. 물론 지나친 서술과 동일한 문장의 반복이 잦아 장편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에게는 읽기 힘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하키타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조차 이렇게 다양한 가치관과 신념, 고뇌를 가지고 삶을 살아낸다는걸 책 한 권으로 접할 수 있다는건 꽤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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