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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VIEW/고전 & 현대 문학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 줄거리&명대사

by 책 읽는 꿀벌 2021. 8. 2.

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한국소설은 오랜만에 읽어서 새로운 느낌이 드네요.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유명한 김영하 작가님의 책은 신선한 소재로 독자를 자극하는 것 같아요. 읽고 나서 알게 됐지만 오늘 포스팅할 책은 작가님의 초기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책은 길지 않지만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참고해주세요.


<책 소개>
저서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저자 : 김영하
발행일 : 1996-08-20
페이지 : 165
등장인물 : 나, 유디트(세연), C, K, 그녀, 유미미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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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라의 죽음

1793년 제작된 다비드의 유화로, 피살된 장 폴 마라의 모습이 그려졌다. 마라 표정은 편안하면서 고통스럽고 증오하면서도 이해하고 있다. 나는 화집을 덮고 작업을 위해 도서관에 간다. 운이 좋다면 인터뷰류나 신문에서 의뢰인(고객)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림이나 CD등을 보다가 사무실로 향한다. 그리고 새벽 한시까지 나는 약 스무 통 정도의 전화를 받는다. '당신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라는 글귀를 보고 전화한 이들 중 고객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나는 그 사람을 만난다.

고객과의 일이 끝나면 나는 여행을 떠나고, 돌아와서 고객과 있었던 일을 소재로 글을 쓴다. 그럼으로써 나는 완전한 신의 모습을 갖추어간다.

 

2. 유디트

유디트와 C는 눈이 내리는 한계령 어귀의 국도, 차 안에 있다. C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어머니의 장례 마지막 날이었다. K와 유디트는 거실에서 섹스를 하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첫인상은 클림트의 그림 <유디트>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K는 C의 동생으로 총알택시기사를 하고 있다. 다른 기사들과 섯다를 하거나 스텔라TX를 타고 시속 180km로 달리는 흥분감에 그의 성기는 발기한다. 그것은 본능적이다. K가 유디트를 데려온 다음 날, C는 츄파춥스를 먹고 있는 유디트와 섹스한다. 유디트는 학생 때 가출한 흔한 사연을 가졌지만 거리낄 것 없는 성격을 가졌다.

기름이 떨어져가는 차 안에서 폭설을 바라보며 유디트는 북극에 대한 얘기를 한다. 도로는 두절되고 유디트와 C는 고립된다. C는 기름이 다 떨어지기 전에 차에서 나가 움직이자고 하지만 유디트는 섹스를 하자고 한다. 섹스 후에 C는 피곤함에 잠이 들고 북극과 유디트,K의 꿈을 꾼다. 깨었을 때 유디트는 차에서 내려 사라진 후다. 서울로 돌아온 C는 그뒤로도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이제 더이상 그는 추파춥스를 먹으면서 섹스하는 여자를 만나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꿈에서 북극을 보는 일이 잦아졌다.

 

3. 에비앙

나는 대학로 한 영화관에서 유디트를 처음 만났다. 유디트는 나의 고객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 나는 그녀와의 계약을 이행했다. 그리고 나는 비엔나 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술관에서 클림트의 유디트 그림을 본 후, 카페에서 유디트를 함께 보던 동남아시아 계열의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그녀는 홍콩에서 왔다고 한다. 다음날 미술관을 구경한 후 섹스를 했다.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사람과의 섹스는 편안하다. 잡념없이 감각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그 다음날 피렌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그녀는 절대 자신에게 생수를 권하지 말라고 했다.

호텔에서 그녀는 바에서 마네킹으로 일한 얘기를 한다. 그녀는 한 조각씩 떼어지도록 만든 종이옷을 입고 바 위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종이에 적힌 가격을 지불하고 종이를 떼어가는 것이다. 어느 날 아르마니 양복을 입고 나타난 남자는 몸에 붙은 모든 종이를 떼어내고 그녀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녀는 그를 위해 종이옷을 입고 그 남자의 정액을 마셔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녀는 에비앙 생수를 마셨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그의 정액을 빈 에비앙 병에 모았다. 그 병에 그의 정액을 채우던 날, 그녀는 그에게 총을 겨누고 그 정액을 다 마시게 한 후 도망쳤다고 한다. 그녀의 이야기엔 허구의 냄새가 섞여 있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거짓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건 그녀가 물을 마시면 토한다는 것이다.

 

4. 미미

K에게서 전화가 와 유디트가 세상을 떠났음을 알려주었다. C는 듣고만 있었다. 유디트의 얼굴 같은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대신 북극, 추파춥스, 둥글게 뭉쳐진 눈덩이, 메마른 섹스 따위만 어지럽게 명멸했다. 면도를 마치고 옷을 걸치자 벨이 울린다. 미미가 들어와 오늘 작업하자고 한다. 석 달 전 어느 날, C는 한 커피전문점에서 반대편 카페에 있는 유미미를 처음 봤다. 친구인 큐레이터가 오더니 반대편의 카페로 가 미미를 데려와 전시회 오픈 날 퍼포먼스를 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C는 유미미에게 같이 비디오 작업을 하자는 제안을 했고 사흘 후 C의 아파트에 찾아온 유미미는 C와 작업하기로 한다. 물감통 속으로 머리카락을 담그고 캔버스의 왼쪽 상단부터 페인팅을 한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백색의 캔버스는 파란색으로 점령되고 머리에 묻었던 물감들이 유미미의 몸을 적시면서 흘러내린다. 캔버스에 올라선 그녀의 몸은 붓대롱이 되고 머리카락은 붓이 되어 움직인다.

스피드는 K의 신이었다. 일요일이면 K는 손님차를 끌고 모터파크에 갔다. K는 신이 자신에게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를 주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택시를 몰기 시작했고 스텔라TX 택시에 만족했다. 그리고 그때 세연(유디트)를 만났다.

전시회 개막일, 미미는 C의 출품작 앞에서 퍼포먼스를 시작한다. 찢긴 캔버스 위에서 미미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퍼포먼스가 끝난 후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에서 C는 유디트를 보았다. 유미미는 나를 만나 자살을 시도하고 실패한 것이 비디오 작업의 계기였다고 말하고 C를 지나친다. C는 전시회장으로 돌아가 K와 대화 후 아파트로 돌아간다.

 

5. 사르다나팔의 죽음

나는 화집을 집어들고 <사르다나팔의 죽음>을 본다. 낭만주의 들라크루아의 작품으로 성도의 함락을 눈앞에 둔 바빌로니아의 왕이 무사들을 시켜 그의 왕비와 애첩, 애마를살해하는 그림이다. 화면 구석에 어두운 색조로 그려진 왕은 팔베개를 한 채로 피를 바라보고 있다. 나체의 여자들과 애마가 그려진 환하고 밝은 살육 장면과 대조적이다. 들라크루아는 알고 있었으리라. 죽음을 주재하는 자의 내면에 대해서 말이다.

미미는 멋지게 떠났다. 유디트는 편안하게 갔다. 지금 이 순간 절실하게 그녀들이 그립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모두 일생에 한 번쯤은 유디트와 미미처럼 마로니에공원이나 한적한 길모퉁이에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예고 없이 다가가 물어볼 것이다. 멀리 왔는데도 아무것도 변한 게 없지 않느냐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김영하


<명대사>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한다.
"죽음이 감히 우리에게 찾아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비밀스런 죽음의 집으로 달려들어간다면 그것은 죄일까?
- 1. 마라의 죽음 中 -

"사람은 딱 두 종류야.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과 죽일 수 없는 사람. 어느 쪽이 더 나쁘냐면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이 더 나빠. 그건 K도 마찬가지야. 너희 둘은 달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종자야. 누군가를 죽일 수 없는 사람들은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해."
- 2. 유디트 中 유디트(세연) -

사람들은 누구나 봄을 두려워한다. 겨울에는 우울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봄은 우울을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만든다. 자신만이 고립되어 있다는 느낌이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겨울에는 누구나 갇혀 있지만 봄에는 갇혀 있을 수밖에 없는 자들만이 갇혀 있는다.
- 3. 에비앙 中 -

그들 기억 속의 벨베데르는 흐릿하고 푸른 기 감도는 사각의 영상으로 수렴된다. 그들은 기억의 불멸을 꾀하느라 생생한 현재를 희생한다. 처량하지만 인간의 숙명이다.
- 3. 에비앙 中 -

"갑자기 신이 나는거 있죠. 내게 인생이란 제멋대로인 그런 거였어요. 언제나 내 뜻과는 상관없는 곳에 내가 가 있곤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미세하게 들뜬 유디트를 바라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었다.
- 3. 에비앙 中 유디트 -

"홍콩의 야경이 멋지다며?"
"지옥보다야 낫겠지."
우리는 웃었다.
"하지만 그건 멍청한 질문이야. 자신이 사는 곳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
- 3. 에비앙 中 그녀&나 -

"인간들은 불멸에 대한 강박 때문에 참된 아름다움을 박제하죠. 그들은 죽은 예술에 길들여진 노예들이에요."
(중략)
"두려움은 흔히 혐오의 외피를 쓰곤 하죠. 자전거를 배우려면 쓰러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야해요. 그리고 힘차게 페달을 밟으면 되죠."
- 4. 미미 中 유미미&C -

세계와 자신, 오브제와 렌즈, 그가 만나왔던 여자들과 자신, 그들 사이에 놓인 강을 결코 좁히지 못할 것이라는 비감한 절망이 몰려왔다. 그는 북극으로 걸어간 유디트를 생각했다. 나이 서른이 되면 사랑도 재능인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 4. 미미 中 -

집착의 강도는 어떤 일에 들인 시간의 양에 대체로 비례한다.
애정도, 예술도, 다른 모든 것도 이 법칙에서 그리 자유롭지 않다고 그는 생각해왔다.
- 4. 미미 中 -

"멋진 작업이었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내게 구원일 수는 없었어요."
"아무도 다른 누구에게 구원일 수는 없어요."
- 5. 사르다나팔의 죽음 中 유미미&나 -

<마무리>
이 책은 호평과 혹평을 동시에 받고 있는 책입니다.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인 죽음, 그 중에서도 자살을 이런 방식으로 다룬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죠. 작가님도 예상못한 바는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후기를 쓴다면 저는 혹평 쪽에 가까운 편입니다. 책의 완성도를 떠나서 죽음과 섹스에 대한 날것 그대로의 해석이 불편했거든요. (물론 이 점은 관점에 따라 이 책의 장점으로 보는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편한 감상과는 별개로 인상깊었던 점도 많았습니다. 죽음(살생), 섹스(성욕), 예술(내면심리) 등을 통해 자극적인 인간 본성의 표출을 말하는 무미건조한 문체가 특히 좋았습니다. 어떠한 대상을 파괴하고, 욕정하고, 매개체로 하여 나를 투영해내는 모든 행위가 쾌락을 추구하는 인간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 같았거든요.
스스로를 파괴하고 죽음을 통해 신적 영역에 도전하는 사람과 그 사람을 도움으로써 그 비밀을 엿보는 사람, 마지막으로 죽은 이들을 곱씹으며 살아갈 사람. 남은 이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변함 없음을 보여주며 소설은 끝납니다. 과연 미미와 유디트의 여행은 그들을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 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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