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최근 장편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던 최은영 작가님의 등단작인 쇼코의 미소를 읽었습니다.
7가지 단편 소설을 묶어 출간된 쇼코의 미소는 우리가 평소에 기억의 뒤편으로 밀어두었던 사회의 이면과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책소개>
저서 : 쇼코의 미소
저자 : 최은영
발행일 : 2016-07-07
페이지 : 296
등장인물 : 소유(나), 쇼코, 할아버지, 엄마
나, 투이, 응웬아줌마, 호아저씨, 엄마, 아빠
해옥(엄마), 순애(이모), 순애남편(형부), 아빠
영주(나), 한지, 테오, 카로
소은(나), 미진 선배, 율랴
미카엘라(나), 엄마, 아빠, 노인
말자, 지민, 영숙, 박서방
<줄거리>
- 쇼코의 미소
고등학교 1학년, 일본의 자매학교에서 쇼코라는 아이가 교환학생으로 왔다. 소유는 영어를 할 줄 안다는 이유로 호스트가 되어 일주일 간 함께 생활하게 됐다. 엄마와 외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집에 일주일 간 활력이 돌았다. 쇼코는 돌아간 이후에도 계속 나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19살, 도쿄에 갈 수 없게 됐다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긴다. 그리고 소유와 쇼코는 두 차례 재회하게 되는데, 할아버지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서로에게 상처와 위로를 준다.
- 씬짜오, 씬짜오
나의 가족은 독일 플라우엔 이민 생활 중 베트남에서 온 응웬아줌마네 가족과 친해지게 된다. 저녁식사 시간, 어른들이 식민 지배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나는 한국은 침략한 적이 없는 착한 나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응웬아줌마는 베트남전쟁으로 가족을 잃었고, 아빠는 참전용병이었던 형을 잃었다. 방향 없는 슬픔과 분노로 두 가족은 멀어진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에 헤어질 때도 다시 만났을 때도 안녕이라는 말 뿐이다.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엄마는 입원 중에 이모가 찾아왔다고 말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엄마는 11살에 순애 이모를 처음 만났다. 수선집에서 할머니를 도와 일하던 이모는 마땅한 가족도 없이 일만 했지만 22살엔 엄마의 친구 오빠와 연애하고 결혼도 했다. 이모는 잘 살아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시기였다. 이모의 남편은 공산주의로 몰려 체포됐고 불공정한 군사재판을 받았다. 이모는 혼자 딸을 낳았고 엄마와 이모는 천천히 멀어졌다. 형부가 출소한 겨울 엄마는 이모의 집을 찾았고 그 이후 할머니의 바람대로 이모와 관계없는 사람으로 산다.
- 한지와 영주
영주는 프랑스 지방 수도원에서 봉사자로 머물기로 결정했다. 남자친구와는 헤어졌고 가족에게는 힐난 받았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한지를 만난다. 나는 지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고 한지는 나이로비에서 수의사로 일하다가 수도원에 왔다. 한지는 모든 사람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영주는 한지와는 '나이트 가드'를 하며 많은 얘기를 나눴다. 장애가 있는 그의 동생 레아, 아프리카에 방목해준 코뿔소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이로비로 떠날 때까지 한지는 나를 무시했다. 나는 그간의 얘기를 담은 일기장을 얼음 속에 묻었다.
- 먼 곳에서 온 노래
소은과 미진선배는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났다. 학생 운동을 하던 노래패였다. 시대가 변하며 동아리는 사라졌다. 미진 선배는 소설을 공부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 나는 그 동안 너무 아팠다. 그리고 어느날, 아무 이유 없이 선배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선배의 죽음은 선배를 미워했던 사람들, 좋아했던 사람들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나는 러시아에서 선배의 룸메이트였던 율랴를 만나 선배의 노래를 함께 들었고 선배의 얘기를 했다.
- 미카엘라
엄마는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게 답답하고 싫었다. 아빠가 돈을 벌지 않고 책만 들여다 보는 동안 엄마는 하루 종일 미용실에 서서 일했다. 교황 성하의 미사에 함께 하겠다고 서울로 온 엄마가 세월호 관련 시위 중인 광화문 광장에 있는걸 TV에서 보게 된다.
- 비밀
말자는 항암치료를 받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가 6개월 후에 전이 사실을 알았다. 말자는 맞벌이하는 딸네의 요청으로 손녀인 지민을 맡아 키웠었다. 말자는 지민을 오냐오냐 키웠다. 지민은 한글을 모르는 자신의 첫 선생님이기도 했다. 지민은 중국시골로 선생님이 되기 위해 갔다고 했다. 전화도 안 닿고 집배원도 갈 수 없는 곳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은 말자는 닿지 못하는 지민에게 직접 전해줄 눈물 젖은 편지를 쓴다.
<명대사>
쇼코는 나를 보고 조용히 웃었다. 친절하지만 차가운 미소였다. 다 커버린 어른이 유치한 어린아이를 대하는 듯한 웃음이었다.
- 17p. 쇼코의 미소 中 -
저렇게 제멋대로고 충동적이고 마음 여린 이상한 사람. 이상한 나의 할아버지. 저 엉망진창인 사람. 나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아버지가 씌워준 우산을 쓰고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 44p. 쇼코의 미소 中 -
새벽에 눈을 뜨면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단단한 땅도 결국 흘러가는 맨틀 위에 불완전하게 떠 있는 판자 같은 것이니까. 그런 불확실함에 두 발을 내딛고 있는 주제에, 그런 사람인 주제에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 59p. 쇼코의 미소 中 -
어떻게 그렇게 여러 사람의 마음이 호의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고작 한 명의 타인과도 제대로 연결되지 못하는 어른이 된 나로서는 그때의 일들이 기이하게까지 느껴진다.
- 71p. 신짜오 신짜오 中 -
그 흔한 포옹도, 입맞춤도, 구구절절한 이별의 수사도 없었다. 그저 안녕, 그 한마디였을 뿐. (중략)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셔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중략)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다.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든 추억만으로도 웃음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 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
- 91p. 신짜오 신짜오 中 -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 115p.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中 -
두려움은 내가 생긴 대로 살아서는 안 되며 보다 나은 인간으로 변모하기를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었다. 달라지지 않는다면,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 세계에서 소거되어버릴 것이었다.
- 130p. 한지와 영주 中 -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중략)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 159p. 한지와 영주 中 -
이 작은 집단에서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 위에 서야 후련한 사람이 무슨 민주주의 운운이에요. 당신 같은 사람은 차라리 독재가 편할 거야. 인간이 평등하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솔직히.
- 192p. 먼 곳에서 온 노래 中 -
그가 하는 일들이 돈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무능하고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단죄할 수는 없었다. 세상에는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중략) 그가 세상에 소용없는 사람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는 세상의 그 많은 소용 있는 사람들이 행한 일들 모두가 진실로 세상에 소용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 222p. 미카엘라 中 -
다수의 선한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세상을 망친다고 아빠는 말했다. 아빠의 말은 맞았지만 그녀는 이런 세상과 맞서 싸우고 싶지 않았다. 승패가 뻔한 링 위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수그리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고, 자신을 소외시키고 변형시켜서라도 맞춰 살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부딪쳐 싸우기보다는 편입되고 싶었다. 세상으로부터 초대받고 싶었다.
- 227p. 미카엘라 中 -
말자는 지민이 서러움을 모르는 아이로 살기 바랐다. 흘릴 필요가 없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을 겪지 않았으면 했다. 삶에 의해 시시때때로 침해당하고 괴롭힘당하지 않기를 바랐다. 지민은 삶을 견디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기꺼이 누리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 245p. 비밀 中 -
사람 좋아하믄 맘이 아프구 힘들잖여. 할미는 겁이 많아선가 언제부턴가 그런 게 무섭드라. 그래두 늙음 안 그럴 줄 알았어여. 근데 아니잖여. 눈도 늙구 귀도 늙구 손발이 나무 껍데기만치 딱딱해져두 맘은 안 그렇드라.
- 257p. 비밀 中 -
<마무리>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의로든 타의로든 눈 감고 귀 막고 지나가는 일들이 많다. 무의식 중에 대수롭지 않게 지나갈 수도 있고, 불편한 진실을 굳이 알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피해갈 수도 있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일부터 역사에 남을 사건까지, 회피는 대소사를 가리지 않는다. 이렇게 외면하는 것과 무시를 당하는 것 모두 우리의 삶이다. 이 단편집에서는 이런 삶들을 다루고 있다. 이야기의 화자는 모두 여성으로 소외받기 쉬운 대상이며 그러한 상황을 겪었거나 접하게 된다.
그리고 7개 각 소설 모두 가족간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특히 엄마와 딸의 관계 혹은 조부모와 손녀의 관계가 중점적으로 다뤄져서 섬세하면서도 애틋한 감정선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각 인물을 이중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등의 모순된 서술적 트릭은 소설이 끝난 이후에도 독자로 하여금 계속 내용을 곱씹어보게 했다. 이러한 서술은 각 이야기의 인물들을 타인이 아닌 나의 과거이자 현재, 또는 미래로 여기게 하여 더욱 몰입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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