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친구 추천으로 읽게 된 단편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입니다.
4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고 어딘가 조금 비틀리고 부족한 사랑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길지 않아서 가볍게 읽기 좋았고 간간이 공감가는 구절들이 있어서 좋았어요.
<책소개>
저서 : 칵테일, 러브, 좀비
저자 : 조예은
발행일 : 2020-04-13
페이지 : 165p
등장인물 : 채원, 정현, 태주, 선배
여울(물), 이영(숲)
주연, 엄마, 아빠
세호, 영희, 찬석
<줄거리>
1. 초대
채원은 정현과 사귀면서 그에 맞춰서 혼자만 변해가는 모습을 자각하게 된다. 이때 그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여자 태주가 나타나고 채원은 흐릿한 인상의 그녀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결국 그녀의 기묘한 초대에 따라 리버뷰 리조트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17년이나 자신을 괴롭히던 목에 박힌 흰 가시를 빼낸다.
2. 습지의 사랑
여울목에 사는 물귀신 물은 오랜 시간을 한 자리에 있으면서 무료해 하던 중 자신을 보고 도망가지 않는 숲을 만나게 된다. 둘은 대화를 하기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친해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재개발을 위해 숲의 나무를 벌목하고 습지를 메우려 한다. 숲을 개간하는 과정에서 이영(숲)의 시신을 찾게 된다. 하지만 재개발은 계속 진행된다. 얼마 후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고 물이 땅 위로 올라오면서 처음 서로를 가까이 바라보게 된다. 나무가 없는 산은 산사태가 발생하고 여울목과 근처 마을 모두 뒤덮이게 된다.
3. Cocktail, Love, ZomBi 칵테일, 러브, 좀비
여느때처럼 술을 먹고 들어온 아빠가 다음 날 좀비가 됐다. 생전의 습관처럼 밥을 먹고 출근을 하려고 하려고 하는 모습에 주연과 엄마는 차마 신고를 하지 못하고 묶어서 감시하게 된다. 뱀술을 먹고 기생충에 감염된 아빠는 결국 방을 탈출해서 나(주연)를 물었고, 엄마와 나는 장례라도 치르기 위해서 용역을 구해 아빠를 사살하고 화장한다.
4.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세호는 사업이 망한 후 알콜중독과 가정폭력범이 된 아버지가 과도로 어머니를 살해한 것을 목격한다. 이후 과도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하게 되는데 누군가가 시간을 세 번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영희는 스토킹을 당하고 있던 도중, 자신을 도와준 찬석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스토커가 찬석을 살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그를 만난 것을 후회하는데 누군가가 시간을 세 번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명대사&구절>
내 목에 17년째 박혀 있는 가시. 내 의사를 막는 모든 것들, 입에서 나오지 못한 말들은 엉기고 뭉쳐서 가시로 남았다. 그것은 다시 내 목구멍을 틀어막고 여린 부위를 찔러 댄다.
- 초대 中 -
"이영."
숲이 물을 보았다. 큼지막한 눈이 깜빡였다. 물은 숲의 눈을 쫓았다. 숲의 눈동자는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바닥에 닿더니 이내 다시 물을 향했다. 숲이 물었다.
"넌 이름이 뭐야?"
물은 죽기 전 자신에 관해서는 기억나는게 없었다. 숲처럼, 자신도 뭔가를 말해 주고 싶었는데. 물은 슬퍼졌다. 받은 만큼 돌려줄 수 없는 마음이 슬펐다. 물은 더듬거리다가 답했다.
"나는 잊어버렸어. 알려 줄 이름이 없어. 이름은커녕 얼굴을 본 지도 무척 오래돼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라."
그러자 숲이 답했다.
"없으면 다시 만들면 돼. 네가 누구인지 이름을 정하는 거야."
처음 듣는 말이었다. 너무 가슴 떨리는 말이어서 자신이 이런 말을 들어도 되는지 두려웠다.
- 습지의 사랑 中 -
주연은 자신에게 가족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했다. 아빠를 사랑했나? 사랑했다. 하지만 사랑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엄마를 함부로 대하고 고집불통이고 자기 이야기만 맞다고 주장하는 그가 꼴 보기 싫었던 적도 많았다. 사실 싫은 기억이 더 많았다.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를 사랑하지만, 아빠와 함께 사는 엄마를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가끔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빠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신에게 풀 때면 아빠와 마찬가지로 싫었다.
그러면서도 앞에서는 적당히 웃었고, 그들이 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대학을 다녔다. 가끔은 사랑한다고도 말했다. 주연은 그들이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래서 때때로 자신조차 싫어졌다. 결국 그 모든 증오의 밑바닥에 깔린건 애정이었다.
- Cocktail, Love, ZomBi 칵테일, 러브, 좀비 中 -
사실 이것은 공평하지 않다. 그동안 그가 우리에게 베푼 폭력을 생각한다면, 이 정도는 아직 한참이나 공평하지 않았다. 하지만 삶이란 것이 원래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나는 어머니와 똑같이 목이 찢겨 그녀의 곁에 풀썩 쓰러지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결국 오늘에서야 모든 일이 벌어졌다. 내 손에 들린 과도엔 이제 아버지의 피와 어머니의 피가 섞여 들었다. 우리는 가족이니. 그래, 가족이니 이제 내 피까지 섞인다면 우리는 과도 안에서 다시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기가 싫었다. 죽어서까지 피가 섞이는 건 싫었다. 그래서 새 칼을 꺼냈다. 과도보다 큰 식칼이었다. 과도보다 더 잘, 한 번에 썰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어머니와 아버지를 과도 안에 함께 살게 한 것이 뒤늦게 죄송해졌다. 어머니는 죽은 뒤에도 자신을 찌른 흉기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인 것이다. 각자 다른 칼에 살았어야 되는데.
-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中 -
<마무리>
단편집의 네 소설은 사랑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종류의 모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이 너무 이기적인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보잘 것 없는 나의 위안, 자만심, 욕심을 위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핑계를 대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초대'의 채원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목에 걸린 가시처럼 잊을만하면 그녀를 쿡쿡 쑤시는 말들을 들어왔다. 그런 말들은 교묘하게 나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나를 변화시킨다. 말들의 가시는 참으면 참을수록 점점 커져서 몸 속에서 빼내지 못 하고 나를 꼭두각시 인형으로 만든다. 그래서인지 태주가 채원의 가시를 토해내게 하는 장면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녀가 느낀 후련함을 나도 느껴볼 수 있을까.
참고 억눌러 온 말을 내뱉는다는 건 나와 상대 모두에게 상처를 입힐 각오를 한다는 것이다. 그 용기를 낸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살인과도 같은 무게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국 평생을 참고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또한.
'습지의 사랑'에는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들의 어색하고 두근거리는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오랜 시간을 홀로 부유하다 보면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는 것만으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들의 풋풋한 설렘은 재개발의 꿈과 함께 스러졌다. 폭력적이고 끝을 모르는 인간의 욕망은 죄 없는 이들을 짓밟으며 나아가다 결국엔 자멸한다.
가식으로 감춰두었던 애증의 실체를 돌아보는 순간은 언제나 힘들다. 주연의 엄마는 아빠가 없는 삶이 두렵다고 말한다. 그건 애정에 기반한 말이라기보다 경제력, 관성, 사회적 시선에 초점을 둔 불안함에서 기인한 감정이다. 이런 불안감과 가족이라는 정, 미련이 복합적으로 얽혀 결국 주연이 물리고 나서야 아빠를 처리하기로 한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로 마음 먹는 순간은 이렇게 상실이 눈 앞에 들이밀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최후의 순간까지 발악하기 때문에 인간은 나아갈 수 있는게 아닐까 생각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되는 슬프고 잔인한 시간의 고리 속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갇힌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상대방을 위한다는 마음에 도취되어 결국 내가 원하는 바를 좆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되는 타임 리프 소설이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는 장난스러운 속삭임은 오싹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해서 그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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