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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VIEW/고전 & 현대 문학

파친코 구슬 - 엘리자 수아 뒤사팽/ 줄거리 & 명대사 & 후기

by 책 읽는 꿀벌 2023. 8. 11.

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상실 그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건조하게 풀어내는 소설입니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걸 알지만 잊을 수도 없기에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그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고향이든 가족이든, 사랑의 대상을 그리워하는 건 모두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죠.

어디에서도 안주하지 못하는 제 3자의 시선으로 풀어내어 어색하고 불편하면서도 날것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책소개>

저서 : 파친코 구슬
저자 : 엘리자 수아 뒤사팽
발행일 : 2018.10.10
페이지 : 212p
등장인물 : 클레르, 미에코, 오가와 부인, 할머니, 할아버지, 샌드위치 우먼 등

 

 

<줄거리>

클레르는 한국인 어머니를 둔 스위스 혼혈이다. 그녀는 방학기간 중 한국 방문을 하기 위해 외조부모를 모시러 일본으로 향한다. 재일교포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본 교외에서 50년간 파친코를 운영하며 살고 있다. 일본에 머무는 동안 프랑스어 과외를 하기로 하고 마에코와 오가와 부인을 만난다. 둘은 리모델링 예정인 폐호텔에서 지내고 있다. 미에코는 아버지의 실종에 대해 담담하게 말하지만 이곳을 떠나면 아빠가 돌아올 수 없다고 말한다.

클레르는 스위스에서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어 차선책으로 일본어를 공부했지만 일본어를 하지 않으려는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에 그들은 많은 대화를 하지 못한다. 미에코와 시간을 보내면서 디즈니랜드, 하이디 파크 등을 방문한다. 클레르는 생일 날 함께 보내자는 미에코, 오가와 부인의 요청을 받아 들이지만 따로 말을 하지 않는 바람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클레르의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했다. 결국 사과를 하고 선약을 간클레르는 불편한 마음을 지우지 못한다. 이후 클레르는 귀 염증을 앓게 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의 간병을 이해하지 못하고 귀찮아 한다.

한국으로 가는 계획을 결국 실행에 옮겨서 신칸센을 타고 후쿠오카 항까지 도착한다. 하지만 배를 타기 직전 할머니는 한국으로 가는 것을 거부하고 결국 클레르 혼자 승선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명대사&구절>

전쟁 직후, 일본인들에게는 오락거리도, 영화도, 연극도 없었다. 암시장이 위세를 떨쳤는데,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 담배였다. 국적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거부당한 일본의 한국인들은 게임 하나를 상상해냈다. 수직 판때기. 구슬들. 기계 손잡이. 구슬 대 담배.

파친코가 일본 경제에서 어느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는지 내게 가르쳐준 사람도 마티유였다. 한국이 분단되고 그 민족이 갈 수 있는 곳이면 어디로든 달아났던 1953년 일본열도 전체에 약 40만 개의 파친코가 난립했다. 다른 여가활동이 확산된 60년대부터 파친코를 드나드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자이니치와 그 후손들이 거의 독점적으로 운영하는 20만 개 이상의 파친코가 아직 남아 있다.

- 6 中 -

 

"일본에서는 해마다 수천 명이 사라져요. 새로운 신분을 얻기 위해 사기업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녀가 나를 향해 돌아선다.

"오해가 없으라고 하는 말이에요. 그 일은 미에코와도 나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어요. 그 사람이 훌쩍 떠난 거, 그건 배신이 아니었어요."

(중략)

오가와 부인이 창가로 다가간다.

"난 이 높이를 견디지 못해요. 현기증이 나서. 난 안개가 좋아요. 멀리 못 보게 하니까. 지평을 막아버리죠. 아직 시간이 있다는, 아무것도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인상을 줘요. 눈앞으로 다가오는 것들을 아무것도 보지 않을 권리."

그녀가 짧게 웃는다.

- 7 中 -

 

나는 곁눈으로 그녀를 쳐다본다. 할머니는 레일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두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기차 한 대가 지나가자 공기가 요동친다. 내가 그녀를 붙든다.

"됐다! 걱정 마라." 그녀가 나를 안심시킨다. "내가 늙은 할망구가 되면 도넛이라도 만들어서 팔 테니까!"

처음에는 그게 기차 때문인지 지진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아직 지진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진짜 지진, 잠을 자면서도 느낄 수 있는 그런 지진. 대지진이 일어나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나 자신을 어딘가에 붙들어 매려고 애쓴다.

- 9 中 -

 

나는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미에코, 초대, 하지만 그들이 미리 귀띔만 해줬어도 초대를 거절했을 거라고. 할머니가 내 말을 자른다. 너도 아무 말 안 했잖니. 넌 우리한테는 아무 말도 안 해. 할머니는 심지어 초콜릿 케이크까지 샀다. 그녀는 자신의 말에 힘을 싣기 위해 부엌으로 가서 설탕을 녹여 만든 숫자 30으로 장식된 둥근 빵을 가져온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내 탓이 아냐, 난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한국말을 잊어버린 것도, 그리고 내가 프랑스말을 하는 것도 다 내 탓이 아냐. 내가 일본말을 배운 건 당신들을 위해서야. 그건 우리가 '살아가는' 나라의 언어들이니까.

- 16 中 -

 

"사람은 동물의 허물처럼 죽어야 할 것 같아요. 늙어갈수록 피부가 맑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에는 속이 모두 보이는 거예요. 핏줄도, 뼈도, 감정들도, 모두요. 동시에 피부가 거울처럼 되는 거예요. 완전히 투명하게 변하기 전에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게요. 그러다 완전히 투명해지면 자신의 마지막 숨결을 주기 위해 자식에게 가는 거예요."

"자식?"

"예. 후에 사는게 자식이니까요."

내가 고쳐준다. '뒤이어'라고 말하는 거야. '후에'가 아니라.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자식이 없으면? 혹은 자식을 원치 않으면?"

그녀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러고는 어쨌거나 사람은 죽어야 한다고 말한다.

- 25 中 -

 

"한국이 분단되었을 때, 우리 국적은 아직 하나인 한국 국적이었다. 사람들은 그걸 조선이라 불렀지. 한국이 둘로 나뉘자, 일본 정부는 우리에게 한국인 신분을 유지하게 허락해줬어. 하지만 남과 북,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지. 많은 사람들이 가족 때문에, 혹은 우리 전통과 더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북을 선택했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네 할머니와 나는 남을 선택했어. 서울에서 왔으니까. 그게 유일한 이유였어. 나머지는 아무것도 몰랐지. 우리는 정치적 이유, 냉전, 러시아, 미국, 이런 건 전혀 몰랐어.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에겐 남과 북이 따로 있은 적이 없단다. 우리는 모두 조선의 사람들이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사람들이지."

그가 말을 멈춘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겐 하나의 언어가 남았어."

- 26 中 -

 

 

<마무리>

섞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유대하려 노력하는 모습은 보는 이마저 어색하게 만든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가까워져야할 명분은 존재하지만 서로에게 낯선 이방인이다.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도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른 문화에 속해있고, 심지어 세대마저 다르다. 그건 마치 맞지 않는 퍼즐조각으로 그림을 완성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들과 같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어울리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불편한 상대방의 방식을 어떻게든 참고 같이 해보려는 시도에서 내가 겪었던 난처한 상황들이 연상됐다.

이들은 상실의 시대를 살았고, 살아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잃어버린 것을 흘려내지 못한 자들의 공허함은 점점 커졌다. 누군가는 미련이라 하고 누군가는 기다림, 누군가는 헛된 희망이라 부르는 감정들이 뭉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구멍을 만든다.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한 혼란, 조국과 언어의 상실로 인한 소통의 부재, 실종된 아버지를 기다리며 이사하지 못하며 온전한 집을 거부하는 모습. 상실을 잊지 못하는 자들의 고집은 결국 또 다른 부재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역사는 '몇년도에 어떤 사건이 있었다'는 식의 서술 한 문장으로 그 일이 끝난다. 하지만 그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어쩌면 그 영향이 다음, 또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잊혀진 듯 우리 일상에 스며든 과거의 흔적을 찾아내어 글로 풀어낸다는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 3국의 정서와 한국인 가족을 둔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시선으로 조명함으로써 우리는 조금 더 이들을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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