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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 VIEW/고전 & 현대 문학

당신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 줄거리 & 명대사 & 후기

by 책 읽는 꿀벌 2023. 8. 29.

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영화 '컨택트'를 보고 테드 창의 소설에 관심이 가서 읽게 된 단편집입니다.

컨택트를 통해 본 헵타포드는 어딘가 실존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요.

지구를 침략하는 외계 생명체가 아닌 우주 너머의 지적인 존재가 언젠간 인간과 접촉하는 날이 올 것만 같았거든요.

테드 창이 과학을 이용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독특하면서도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그래서 더 빠져드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결코 짧다고도, 쉽다고도 할 수 없지만 단편 하나하나 집중해서 읽기 좋은 책이었습니다.

 

 


<책소개>

저서 : 당신 인생의 이야기
저자 : 테드 창
발행일 : 2002.07
페이지 : 448p

 

 

<줄거리>

바빌론의 탑

이해

영으로 나누면

네 인생의 이야기

일흔두 글자

인류 과학의 진화

지옥은 신의 부재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

 

<명대사&구절>

어렸을 때 들은 대홍수 이후의 이야기가 머리에 떠올랐다. 인간은 또다시 이 땅의 구석구석까지 퍼져난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많은 땅에서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야기는 이들이 어떻게 배를 타고 세계의 가장자리까지 항해해, 물 아지랑이를 뚫고 쏟아져내리는 대해가 까마득하게 아래에 있는 심연의 검은 물과 합쳐지는 광경을 보았는지를 언급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대지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으며, 그것이 작다고 느끼고, 그 경계 너머에 있는 것들, 야훼의 모든 피조물을 보고 싶어하게 되었다. 하늘을 우러러보고, 하늘의 물이 담긴 저수지 위에 있는 야훼의 주거란 도대체 어떤 곳일까 궁금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연유로 몇 세기 전 이 탑의 건설이 시작되었다.

- 바빌론의 탑 中 -

 

어떤 의사는 나의 능력을 습득, 유지, 행동, 전이라는 구성요소로 치환해 파악한다. 다른 의사는 수학 논리적 추론, 언어적 커뮤니케이션, 공간 시각화 능력이라는 관점에서 나를 본다.

이 전문가들을 보고 있자니 대학 시절의 교수들이 생각난다. 그들에게는 각자 애지중지하는 이론이 하나씩 있었고, 그들은 그 이론에 들어맞도록 연구 결과를 왜곡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한층 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이들에게서 배울 것은 전무하다.

- 이해 中 -

 

그는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키며 말한다. "이해해."

처음에는 못한다. 그런 다음, 소름끼치게도, 나는 이해한다.

레이놀즈는 입 밖에 내서 말하는 커맨드를 설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감각을 통한 유발 자극이 결코 아니었다. 기억 자극이었다. 이 커맨드는 개별적으로는 아무런 해가 없는 일련의 지각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는 이것들을 내 뇌 속에 마치 시한폭탄처럼 심어놓았던 것이다. 이 기억의 결과로서 형성된 정신 구조들이 이제 하나의 패턴으로 융합되기 시작해 나의 붕괴를 규정하는 게슈탈트를 형성한다.

(중략)

그가 나보다 더 독창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의 계획에는 분명 좋은 징조이다. 구세주에게는 심미주의보다는 실용주의 쪽이 훨씬 더 쓸모가 있다.

세계를 구원한 후 그는 무엇을 할 작정일까

나는 '말'을 이해하고,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을 이해한다. 고로, 나는 붕괴한다.

- 이해 中 -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들은 -" 여기서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내가 상상해본 적도 없는 거였어. 만약 그게 보통의 우울증 같은 거였다면 당신도 이해했을 거고, 함께 극복해나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은 그것과는 달라. 나는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신학자가 된 느낌이었어. 그럴까봐 단순히 불안해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사실이라는 걸 아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

"아니."

"그 느낌을 당신에게 전할 수는 없었어. 내가 마음속 깊이 무조건적으로 믿고 있었던 무엇인가는 결국 진실이 아니었고, 그걸 증명한 사람은 다름아닌 나였으니까."

- 영으로 나누면 中 -

 

우리 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사실을 내가 매일 자각하게 되는 것은 네가 처음 걷기 연습을 하면서부터야. 너는 쉬지 않고 어딘가로 달려나가겠지. 네가 문지방에 부딪치거나 무릎이 까질 때마다 나는 너의 아픔을 내 것처럼 느끼게 돼. 마치 말을 안 듣고 멋대로 행동하는 팔이나 다리가 하나 더 생긴 듯한 느낌이지. 내 몸의 연장이니까 지각신경이 느끼는 아픔은 고스란히 나한테 전달되지만, 운동신경은 전혀 내 명령에 따르지 않는 꼴이야. 정말 불공평해. (중략)

반대로 네가 웃는 것을 볼 때도 있겠지. (중략) 그 소리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소리이지. 내가 분수나 샘이라도 된 듯한 기분으로 만들어주는 소리란다.

- 네 인생의 이야기 中 -

 

고개를 뒤쪽으로 돌린 우아한 여인으로도 보이고, 턱이 가슴에 묻힐 정도로 고개를 푹 숙인, 울퉁불퉁한 코를 한 노파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그림의 경우처럼 '올바른' 해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양쪽 모두 동등하게 타당하다. 그러나 두 그림을 동시에 볼 수는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었다. 나로 하여금 선택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게 한 것은 내가 미래를 아는 것 또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와는 반대로 미래를 아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행위를 포함해서, 나는 결코 그 미래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다.

(중략)

헵타포드의 경우 모든 언어는 수행문이었다. 정보 전달을 위해 언어를 이용하는 대신, 그들은 현실화를 위해 언어를 이용했다. 그렇다. 어떤 대화가 됐든 헵타포드들은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 네 인생의 이야기 中 -

 

스트랜튼은 전통적으로 자동인형에 대해 남성적 또는 여성적 특질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는, 성을 나타내는 통명에 관해서도 더 많은 것을 배워나갔다. 그는 그런 통명은 하나밖에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이 여러 버전 중 가장 간단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이것은 명명 학회에서는 거론되는 법이 없는 화제였지만, 이 통명이야말로 현재 가장 상세하게 연구된 것 중 하나였다. 사실 이 통명이 사용된 최초의 예는 성서 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요셉의 형제들은 여러 형제가 한 여자와 교접하면 안 된다는 금기를 깨지 않기 위해 여성 '골렘'을 만들어 공동으로 사용했다. 이 통명은 몇 세기 동안이나 비밀리에 개발되었고, 이런 연구의 중심지는 콘스탄티노플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이곳 런던에서조차도 특별한 창관으로 가면 최신 모델의 고급 창녀들을 살 수 있었다. 부드러운 동석을 깎아 윤기가 날 때까지 연마해놓은 이 자동인형들은 사람의 체온과 같은 온도로 덥혀지고 향유를 뿌린 상태로 제공되며, 그보다 더 비싼 가격을 부를 수 있는 것은 인쿠부스나 수쿠부스밖에는 없었다.

그들의 연구는 이런 비천한 토양에서 발전했다.

- 일흔두 글자 中 -

 

어린 시절 닐은 자신이 신이 내린 벌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이따금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불행을 학교의 같은 반 아이들 탓으로 돌렸다. 아이들의 천연덕스러운 잔인함과, 희생자의 감정적 갑옷에 생겨난 허점을 찾아내는 그들의 본능적인 능력과, 사디즘을 통해 친구들 사이의 우정이 강화되는 방식. 닐은 이것들을 신이 아닌 인간 특유의 행동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같은 반 친구들은 그를 조롱하며 툭하면 신을 들먹였지만, 닐에게는 이들의 행동을 신의 잘못으로 돌리지 않을 만큼의 분별이 있었다.

그러나 신을 비난한다는 함정에는 빠지지 않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을 사랑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 지옥은 신의 부재 中 -

 

코카인을 예로 들어봅시다. 천연 형태의 코카 잎은 쾌감을 줍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정도까지는 아니지요. 그러나 정제하고 순화하면, 그것은 여러분의 쾌락 수용기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강렬하게 자극하는 약물로 변신합니다. 그러면 중독성이 생기는 거지요.

아름다움 또한 광고주들 덕택에 비슷한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진화는 우리에게 잘생긴 외모에 반응하는 신경 회로를 부여했고, 시각 피질의 쾌락 수용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것은 자연환경에서는 유용한 자질이었지요. 그렇지만 백만 명에 한 명밖에는 없는 피부와 골상을 가진 사람에게 전문적인 메이크업과 수정을 가한다면, 여러분이 보게 되는 것은 더 이상 천연 형태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정제된 약제급의 아름다움이고, 미모의 코카인입니다.

-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 다큐멘터리 中 전국 칼리아그노시아 협회 회장 윌터 램버트 -

 

 

<마무리>

테드 창의 다양한 단편집을 엮어서 크게 공통된 주제를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SF를 바탕으로 각각의 주제를 집요하게 다룬다는 점이 작가의 성향을 보여주는 듯 했다. 전문적이고 깊은 해설을 요하는 묘사가 들어가기도 하고 전문용어들이 사용되기도 해서 초반에는 조금 집중이 어려웠지만 읽을 수록 사고의 가능성을 넓히는 기분이었다. 테드 창의 소설은 불가능은 존재하지 않고 그저 인간의 인지와 과학적 구현에 한계가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하는 듯 했다. 

 

특히 '네 인생의 이야기'와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는 조금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보통 미래를 알게 되면 그 미래를 바꾸려 하기 때문에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래를 안다는 것과 자유의지가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정해져 있는 미래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읽으면서 꽤 그럴싸하다고 생각됐다. 1차원적인 시간을 단방향으로 이해하고 있는게 아니라 양방향으로 모두 관망하고 이해하는 존재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해 지구, 그리고 인간에게도 전파한다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헵타포드의 모든 말과 행동은 수행으로써의 역할을 지닌다는 것을 봤을 때 그들이 지구로 와서 언어를 알려주고 떠난 것도 결국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 언어를 통해 자신과 딸을 마주하는 것은 과거를 회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정적으로, 과거와 미래가 모두 변하지 않는 시간선 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뀜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살아가고 사랑하며 삶을 대한다는 것에 묘한 감상을 받았다. 

 

칼리아그노시아에 대한 주장은 읽으면서도 여러 번 생각이 바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각 관계자 및 학생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소설이 진행 됐는데 양쪽의 주장 모두 타당성이 있어서 더욱 그랬다. 나 또한 칼리가 있다면 사용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으나 의무화에 찬성하진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외모를 보지 않고 본질을 보고 교류하고 싶다가도, 아름답고 잘생긴 사람을 보고자 하는 탐미적인 욕구를 거세하고 싶지는 않다. 모순적일 수 있지만 시각적인 자극에 익숙해져서 인간의 '외형적 미'라는 개념을 포기한다는게 상상이 안 된달까.

지금도 온갖 매체에서 내용적, 시각적으로 자극적인 컨텐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대중이 자극에 노출되며 점점 수동적으로 변하고 더 강한 자극만을 원하게 된다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가 아닌 외부의 힘으로 그 영향력을 막으려 든다면 또 다른 수동성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또한 원인을 해결하는게 아니라 방향만을 돌린 처사라 후에 더 거센 반향이 돌아올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결국 소설 속 인터뷰의 내용과 같이 다음 세대가 풀어갈 문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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