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오랜만에 판타지도 시대극도 없는 현대물을 읽어봤어요.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책에 몰입하게 되고 상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스릴러와 추리 소설보다 무서운 책이었습니다.
<책소개>
저서 : 블랙아웃
저자 : 마크 엘스베르크
발행일 : 2016. 03. 07
페이지 : 560p
등장인물 : 피에로 만자노, 소냐 옹스트롬, 로렌 섀넌, 프랑수아 볼라드,
프라우케 미켈젠, 헤르비히 오버슈테터, 요한 페발스키, 위르겐 하틀란트, 제임스 위클리, 조르주 푸카오 등
<줄거리>
2월의 어느 날, 이탈리아 북부에서 시작된 블랙아웃은 전력망 네트워크를 통하여 순식간에 전 유럽을 암흑 속으로 빠뜨린다. IT 전문가이자 해커인 피에로 만자노는 블랙아웃 사태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단서를 찾아낸다. 그는 소냐 옹스트롬을 통해 정부기관에 이 사실을 알리지만 여전히 블랙아웃은 해결되지 않고, 만자노는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을 받아 쫓기는 신세가 된다. 로렌 섀넌의 도움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한 만자노는 포기하지 않고 블랙아웃을 일으킨 세력을 추적한다.
블랙아웃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유럽 곳곳에서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중단되고, 이로인해 야기되는 사고들은 대재앙을 불러일으킨다. 전 세계를 마비시킨 블랙아웃의 원인은 무엇이며, 인류는 빛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 목차 -
그 일이 일어나기 전날, 금요일
첫째 날, 토요일
둘째 날, 일요일
셋째 날, 월요일
넷째 날, 화요일
다섯째 날, 수요일
여섯째 날, 목요일
일곱째 날, 금요일
여덟째 날, 토요일
아홉째 날, 일요일
열째 날, 월요일
열한째 날, 화요일
열두째 날, 수요일
열셋째 날, 목요일
열네째 날, 금요일
열아홉째 날, 수요일
스물셋째 날, 토요일
<명대사&구절>
유럽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전력이 충분히 생산되고 동시에 소비되는 상황을 어떻게든 계속 유지해야만 블랙아웃이 발생한 지역의 네트워크를 보다 신속하게 복구시킬 수 있었다. 전 유럽에서 블랙아웃이 발생하면 복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게 분명했다.
- 브로바일러 통합통제본부 中 페발스키 -
며칠이 지나면 사람들은 이번 블랙아웃이 뉴스에서나 듣던 먼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처하게 될 재앙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나면 조부모나 증조부모가 들려주었지만 건성으로 들었던 2차 세계대전의 참화가 과장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역사에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역사를 써야만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될 것이다.
- 지하사령부 中 -
그들은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희생자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어갈 마음의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 (중략)
돈-권력-법규에 의해서 지배되는 사회, 생산성-효율-소비-엔터테인먼트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회, 무엇이 됐든 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한 한 많이 차지하려는 이기주의가 그 출발점이 된 사회에서 고려대상은 인간이 아니라 이익의 극대화이고, 화두는 공동선이 아니라 비용절감이다. 환경은 자원으로, 효율은 간절한 기도로, 법규는 성물(聖物)로, 이기심은 하느님으로 치환됐다. 너무 늦었다. 블랙아웃 앞에서 파국을 맞이하더라도 이제 멈출 수 없다.
- 지하사령부 中 -
의사는 자신의 일을 마치고 수액 팩의 밀봉 주입구를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걸어놓았다. "5분만 지나면 됩니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또 다른 사람에게 갑시다. 혹시 당신도 손전등이 필요한가요?"
만자노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그들이 방에서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 홀로 남아 그는 계속 에다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의 두 뺨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변의 고요함을 견딜 수 없었다. (중략) 이후 30분 동안에 만자노는 세 사람의 손을 더 잡아주었다. 자동차 사고를 당한 33세 남자, 심근경색으로 몇 번 쓰러진 77세 남자, 그리고 30년 동안 마약에 빠져 폐인이 된 45세 여자였다. 이들 중 그 누구도 만자노, 의사 또는 남자 간호사가 곁에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 뒤셀도르프 中 -
먹을 것을 달라!
얼어 죽고 난 후에 대책을 세울 거냐?
먹을 물을 달라!
춥다, 난방이 필요하다!
전기 없이 못 살겠다!
그들은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최소한의 요구를 주장했지만 이를 충족시키기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었다. 미켈젠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떨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은 따뜻하게 난방된 건물의 유리 창문 뒤에 서 있었기 때문에 외투나 두꺼운 스웨터가 필요 없었고, 목도리를 두르거나 손에 돌멩이를 들 이유도 없었다. 창문 아래 길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은 성채를 포위한 반란군처럼 보였다.
- 베를린 中 미켈젠 -
서방 문명과 정글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노예처럼 부리며 약탈을 멈추지 않는 한, 이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수십억 명은 될 텐데 우리에게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정치가, 은행가 그리고 경영자라는 칭호를 달았지만 사실은 소수에 불과한 범죄 집단이 인간을 지배하고, 기만하고, 약탈을 자행하고 있잖아, 그런 현실 앞에서 절망을 느끼는 인간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에겐 언제라도 또다시 기회가 주어질 거야. 연립주택과 아파트에 살며 공장화된 사무실에서 비겁한 타성에 젖어 사는 인생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인간들이 쏟아져 나오는 한, 우리 조직이 사라져도 또 다른 조직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거야.
- 브뤼셀 中 푸카오 -
<마무리>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정전이란 슈퍼마켓에 내가 원하던 상품의 재고가 다 떨어져서 조금 난감한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다른 마트로 가거나 배송을 시키는 일로 금방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정전 또한 내가 살면서 겪어본 적은 한 두 번에 불과하고 그마저도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모두 해결됐다. 특히 예고없이 지역 단위로 이루어진 정전은 내 기억 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누구도 정전이 심각한 재난을 초래할 거라고 여기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21세기에서 영유하는 평화로운 일상은 전기가 사라지면 무너질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근원은, 이기적이게도 내일 내가 총기 테러를 당할 확률보다 정전을 경험할 확률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내가 걱정해야 할 죽음의 형태는 낮은 확률의 사고사와 병사 정도이다. 아사와 동사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꽤나 좋은 편이라는 걸 우리는 종종 잊는다. 그리고 소설 속 13일 간의 블랙아웃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금 자각시킨다. 과학이 발달하고 수많은 에너지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며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져가는 지금. 문명이라는 이름이 광범위한 네트워크와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폐허 속에서도 사랑과 배신, 희망과 절망은 싹튼다. 대의를 위한다는 거창한 목표보다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작은 행동들이 모여 블랙아웃을 종결시킨다는 게 관전 포인트였다. 또한 상세한 고증 덕분에 현실성이 더해져 더욱 경각심과 감동을 크게 받을 수 있는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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