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오랜만에 장편 SF소설을 읽었는데 역시 취향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판타지가 있어야 책에 대한 흥미가 확 오르는 것 같아요.
외계의 생명체와 우정을 쌓는다는 건 E.T를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보지 않았을까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이야기는 그런 상상을 조금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책소개>
저서 : 프로젝트 헤일메리
저자 : 앤디 위어
발행일 : 2021.05.04
페이지 : 692p
등장인물 : 라일랜드 그레이스, 에바 스트라트, 로키
야오 리지에, 올레샤 일류키나, 마틴 두보이스, 디미트리 코모로프, 로켄, 로버트 리어델, 프랑수아 르클레르 등
<줄거리>
어느날 우연히 태양에서 기묘한 형태의 적외선 광선이 금성 쪽으로 날아가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선의 이름은 발견자의 이름을 본따 만든 '페트로바선'. 그런데 이 페트로바선을 조사한 결과, 광선이 점점 강해지고 있고, 그만큼 태양빛이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급히 금성에 탐사선을 보낸 인류는 그 적외선이 외계미생물들이 태양빛을 흡수하여 축적했다 내뿜는 선의 집합으로, 그 외계미생물이 빛에너지를 통해 물질대사를 한다는 걸 알게 된다. '아스트로파지(astrophage)'라는 이름을 붙인 외계생명체는 주변 8광년 이내의 별을 감염시킬 수 있고, 이에 따라 태양 및 이웃한 별들의 밝기가 모두 감소중인 것으로 밝혀진다. 이들은 항성 주변에 서식하며 대략 그 항성이 내뿜는 빛 에너지의 10%를 차단하는 수준까지 번식해야 안정화 된다.
그런데 유일하게 12광년 떨어진 타우세티만은 밝기의 변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거기에 아스트로파지의 번식을 방해하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아스트로파지를 연료로 사용하는 로켓을 만들어 타우세티로 향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아스트로파지의 생산량이 우주선을 지구로 귀환시키기에는 모자랐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타우세티에 도착해서 해결책을 찾은 후, 작은 무인 우주선 4개에 실어 지구로 돌려보내는 자살 프로젝트로 짜여져 '프로젝트 헤일메리' 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야기는 타우세티 근처에서 오랜 비행을 견디기 위해 코마에 들어갔던 주인공 라일랜드 그레이스가 기억을 잃고 깨어나며 시작된다. 그레이스가 깨어났을 때 다른 동료들은 이미 죽어 있었기에, 주인공은 기억이 없는 채로 혼자 미션을 수행하게 된다. 이야기는 현재와 헤일 메리를 준비할 때 있었던 과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타우세티계에 도착한 그레이스는 또다른 우주선을 마주치게 되고 '로키'를 만나게 된다. 에리드라는 종명을 붙인 그레이스는 로키도 자신의 항성계에 나타난 아스트로파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우세티로 왔음을 알게 된다. 로키와 그레이스는 타우세티계에서 아스트로파지가 번식하는 행성을 찾아 아스트로파지의 천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결국 아스트로파지를 먹어치우는 단세포를 발견해 '타우메바'로 이름 붙이고 금성과 삼세계(로키의 항성계 중 아스트로파지가 번식하는 행성)의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배양한다. 과연 그레이스와 로키는 각자의 행성으로 돌아가 아스트로파지로부터 행성을 구할 수 있을까...
<명대사&구절>
이 항성계에 나 말고도 다른 우주선이 있다. 번쩍이는 빛은 그 엔진에서 나온 것이었다. 저 우주선도 아스트로파지를 동력으로 사용한다. 헤일메리와 똑같다. 하지만 그 디자인은, 그 형태는 내가 여태껏 본 어떤 우주선과도 다르다. 선체 전체가 거대하고 납작한 표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압력 용기를 만드는 최악의 방법이다. 제정신인 사람이 우주선을 저런 모양으로 만들 리는 없다.
제정신인 지구인이라면 말이다.
나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몇 차례 눈을 깜빡인다. 침을 꿀꺽 삼킨다.
저건... 저건 외계의 우주선이다. 외계인이, 우주선을 만들 정도의 지능이 있는 외계인들이 만든.
인류는 우주에 혼자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방금 우리의 이웃을 만났다.
"이런 씨발!"
- 06장 中 그레이스 -
"우리 계속 지구 단위 씀. 아니면 너 헷갈림. 지구 하루 얼마나 길어, 질문? 지구 1년은 얼마나 많은 지구 하루, 질문?"
"지구의 하루는 8만 6,400초야. 지구의 1년은 365.25번의 하루이고."
"이해함." 그가 말한다. "나 여기 46년 있음."
(중략)
"에리디언들은... 에리디언들은 얼마나 오래 살아?"
로키가 한쪽 발톱을 흔든다. "평균 689년."
"지구 시간으로?"
"그래." 그가 약간 날카롭게 말한다. " 늘 지구 단위 너 수학 못 함. 그래서 늘 지구 단위."
- 15장 中 로키&그레이스 -
"왜 우리는 같은 속도로 생각, 질문?"
나는 자세를 바꿔 옆으로 눕는다. "우린 같은 속도로 생각하지 않아. 넌 나보다 계산 속도가 훨씬 빨라. 기억력도 완벽하고. 인간은 그렇게 못해. 에리디언들이 머리가 더 좋아."
그는 빈손으로 새 공구를 잡더니 다시 작업한다. "계산은 생각이 아님. 계산은 과정임. 기억은 생각이 아님. 기억은 저장임. 생각은 생각임. 문제, 해결. 너랑 나는 같은 속도로 생각함. 왜, 질문?"
(중략)
"다른 유사성. 너랑 나는 둘 다 우리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 함. 왜, 질문? 진화는 죽음을 싫어함."
"종족 전체로 봐서 좋은 일이잖아." 내가 말한다. "자기희생 본능은 종 전체가 지속될 가능성을 높여줘."
"모든 에리디언이 다른 이들을 위해 기꺼이 죽지는 않음."
나는 키득거린다. "인간들도 그래"
"너랑 나는 좋은 사람." 로키가 말한다.
"그러게." 나는 미소 짓는다. "그런 것 같아."
- 21장 中 로키&그레이스 -
"나를 그리워할 것임, 질문? 나는 너를 그리워할 것임. 너는 친구임."
"응. 나도 널 그리워할 거야." 나는 보드카를 한 모금 마신다. "너는 내 친구야. 세상에, 넌 내 가장 친한 친구야. 그런데 좀 있으면 우린 영원히 작별하게 돼."
그는 장갑 낀 두 발톱을 서로 탁탁 부딪혔다.
- 25장 中 로키&그레이스 -
"전쟁, 기근, 질병, 사망. 아스트로파지는 말 그대로 종말입니다. 헤일메리호는 지금 우리가 가진 전부예요. 나는 헤일메리호의 성공 확률을 눈곱만큼이라도 높일 수 있다면 그 무엇이든 희생할 거예요."
나는 침대에 누워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그런 말로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다면야."
그녀는 문으로 돌아가 노크했다. 경비병이 문을 열었다. "아무튼요. 그냥 내가 왜 이런 일을 하는 건지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지옥에나 떨어져요."
"아, 그럴 거예요. 분명히 그럴 겁니다. 박사님을 포함한 세 사람은 타우세티로 가겠죠. 나머지 우리는 지옥으로 가요. 더 정확히 말하면 지옥이 우리한테 다가오는 거지만."
- 26장 中 스트라트&그레이스 -
<마무리>
물리, 생명, 지구과학까지 폭넓은 분야의 과학지식이 소설 전개에 스며들어 있다. 비전공자들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쉽게 풀어 쓰고는 있지만 소설의 절반이 아스트로파지를 분석하고 실험하거나 우주선의 작동원리를 설명하는데 할애되다 보니 읽으면서 피로도가 쌓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더 쉽게 소설의 설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허구와 진실이 적절히 섞여서 그럴듯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빠져드는 과정이야말로 SF를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다.
또한 700페이지에 달하는 굉장히 긴 소설임에도 그레이스의 심리가 1인칭 시점에서 자세히 서술되고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레이스는 물론 똑똑한 과학자이긴 했지만 특별히 영웅심리나 희생정신이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평범하게 혼란에 빠지고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잠을 잔 후 개운해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물론 초반에 아스트로파지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조직하기까지는 조금 고비가 있었으나, 로키를 만나는 순간부터는 책을 손에서 떼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이 소설의 키포인트가 로키이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지성을 갖춘 생명과 만나 친구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다. 특히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 고립된 공간에서 동료들의 죽음, 종족의 존폐에 대한 사명감을 안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나와 동등하게 대화할 수 있고 비슷한 사명을 갖고 있는 외계의 생명체라니. 물론 로키와 그레이스의 성향이 잘 맞은 것도 있겠지만 이러한 상황의 특수성이 그들의 우정에 영향을 미쳤음은 분명하다.
둘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하며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독자가 그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약간은 어리숙하지만 서로를 받아들이고 함께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귄다는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상대의 외모, 사회적 지위, 경제력 등 우리가 생각하는 무수한 기준들을 판단하는 잣대가 소용 없어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규격 외의 존재라는게 이 관계의 핵심이다.
로키와 그레이스는 평범의 범주 안에 있는 존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평범하게 선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라면 21장에서 로키가 말한 "너랑 나는 좋은 사람." 이라는 말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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