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책 읽는 꿀벌입니다 : )
김초엽님의 또 다른 소설집을 읽어 봤습니다.
SF라고 하면 호불호가 갈릴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작가님은 그러한 편견을 없애주는 이야기를 쓰시는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과 경험들을 공상과학과 교묘하게 엮어서 풀어내며 공감과 재미를 모두 잡은 책입니다.
단편 7편으로 구성되어 잠깐 잠깐 짧은 시간을 채워야 할 때 가볍게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책소개>
저서 : 방금 떠나온 세계
저자 : 김초엽
발행일 : 2021-10-20
페이지 : 324
<줄거리>
최후의 라이오니
로몬은 의뢰를 받고 멸망한 행성을 탐사 및 청소하는 인류종이다. 다른 로몬처럼 대담하지 못한 나는 시스템이 나에게 단독 의뢰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3420ED 행성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시스템 오퍼레이터인 셀을 비롯한 기계들을 만난다. 하위기계들에게 행성 멸망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셀이 왜 자신을 라이오니라고 부르는지 알게 된다. 이후 셀과 기계, 3420ED의 진정한 마지막을 지켜본다.
마리의 춤
나는 모그였던 마리의 춤 선생님이었다. 모그는 해양오염 해결을 위해 사용된 테트라마이드의 부작용으로 시지각 회로에 결함을 가지게 된 아이들을 말한다. 마리는 플루이드(감각신경을 자극해 모든 사람을 상시적 온라인 상태에 두는 루트칩의 변형), 센서를 통해 움직임을 감지하고 춤을 배웠다. 플루이드를 통해 마리의 계획을 안 나는 공연 측에 익명의 제보를 넣지만 무시를 당하고 공연을 보러 가지 않았다.
마리는 공연 이후 실종됐지만 나는 아직도 문득 마리와 플루이드에 대해 생각한다.
로라
진은 로라를 이해하기 위해 '잘못된 지도'의 집필을 시작했다. 인간은 고유수용 감각을 통한 고유의 신체지도를 갖는다. 이게 어긋난 이들은 팔과 다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여기거나 시청각 감각에 거부감을 느낀다. 로라는 반대로 세번째 팔에 대한 감각을 느껴 결국 로봇 팔을 달기로 한 케이스였다. 진은 책을 집필한 후에도 로라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음을 깨닫는다.
숨그림자
연구원들은 원형인류인 조안을 동면에서 깨어나게 하는데 성공한다. 연구원으로 처음 들어간 단희는 조안과 대화하는데 성공하고 조안이 격리실에서 나와 숨그림자에 적응하도록 돕는다. 하지만 음성 언어가 아닌 입자로 소통하는 숨그림자 사람들에 적응하기 버거워한 조안은 외부 행성 탐사에 지원하고 수십년이 흐른다. 돌아온 탐사대에 조안은 없었지만, 단희는 그들의 추억이 담긴 입자의 액체를 받아볼 수 있었다.
오래된 협약
벨라타의 사제인 노아가 벨라타 행성에 온 지구의 우주여행가 중 한 명인 이정에게 오브와 벨라타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자 쓴 편지 형식이다.
벨라타인들은 20살이 넘어가면 몰입 상태에 빠져 기억상실, 지성 및 언어능력의 감쇠를 겪는다. 행성 대기에 분포하는 루티닐이라는 독성물질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이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오브를 섭취하면 된다. 하지만 오브는 벨라타 신에 대한 금기였기 때문에 지구인들의 주장은 신성모독으로 여겨지고 이들은 쫓기듯 벨라타를 떠나게 된다.
인지 공간
제나는 격자 구조물인 인지 공간의 관리자다. 인지 공간은 공동 지식을 갖고 있으며 공동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담당한다. 성인이 되어 인지 공간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제나와 이브는 둘도 없는 친구였다. 이브는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서 결국 인지 공간의 초입만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인지 공간에 의존하는 공동체에게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며 외부탐사를 나갔다가 사망한다.
제나는 이브가 해왔던 말을 곱씹으며 인지 공간의 관리자를 그만두고 탐사를 나가기로 결정한다.
캐빈 방정식
나의 언니는 저명한 물리학자였다. 하지만 사고로 인해 뇌에서 시간을 지각하는 감각이 손상되며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해졌다. 여러가지 치료를 버티지 못하고 언니는 본래 일하던 연구원이 있는 곳으로 몰래 떠난다. 오랜만에 언니에게 온 메일에는 괴담이 있는 관람차와 케빈방정식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명대사>
죽어가는 셀의 곁에서 라이오니는 셀의 손을 잡는다. 둘은 멸망을 맞이하고 있지만 불행하지 않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본다. 나의 원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최후이자 유일한 존재였던 라이오니의 모습을.
- 최후의 라이오니 中 -
"관객들이 훌쩍이고, 달려 나와 우리를 껴안았어요. 강당의 공기가 습해지는 것에 우리는 어리둥절해졌고요. 그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요? 정말 누가 들어도 엉망진창인 공연을 했는데. 우리는 열다섯 살이었고, 열다섯살은 어린 나이지만 때에 다라 탁월함을 기대받기도 하는 나이잖아요. 그날 저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 마리의 춤 中 -
눈이 마주쳤을 때, 로라는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씩 웃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여전히 로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동시에 제가 앞으로도, 어쩌면 영원히 로라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도요. 하지만 그걸 깨닫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사랑하지만 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신에게도 있지 않나요.
- 로라 中 -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이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
단희는 조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았다. 단희도 숨그림자를 사랑하면서 미워했다. 숨그림자를 사랑할 이유들보다 더 많이, 이곳을 미워할 이유들이 있었다. 그러나 단희에게는 입자가 있고 조안에게는 없기 때문에, 단희는 남고 조안은 떠날 것이다. 무엇도 그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
- 숨그림자 中 -
지난 역사에서 우연히 진실을 알게 된 이들, 일부의 사제들은 협약을 깨고 자신의 삶을 연장하려는 유혹에 시달렸어요. 몰입 상태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이성을 잃고 욕망에 잠식되지요. 우리는 당장의 삶을 갈구하여 협약을 위협했던 사례들을 너무나 많이 보았어요. 그렇기에 벨라타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앎이 아닌 무지이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절제하게 만드는 것은 평생에 걸쳐 우리를 지배하는 규율이고 신앙이며, 금기에 대한 복종입니다.
- 오래된 협약 中 -
한때 이브는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오랜 시간 나는 이브가 곁에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세계는 달라지고 있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혼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존재로 분화되기 시작한 두 사람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이브와 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인지 공간 中 -
모든 기억은 낡아가고, 시간의 흐름 앞에서 그 가치를 시험당하며, 남을 가치가 없는 기억은 지워진다.
- 인지 공간 中 -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분배된 유일한 자원이라고 한다. (중략) 그러나 사실 시간은 객관적이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시간은 인간의 뇌를 통해 해석된다. 어떤 사람의 하루는 어떤 사람의 반나절처럼 흘러간다. 똑딱, 초침이 넘어갈 때 방 안의 사람들이 같은 일 초를 공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 다른 내적 시계로 셈을 하고 있다.
시간에는 측정 가능한 물리적 속성이 없다. 다세포생물들은 감각의 초인지적 통합을 거쳐 시간을 지각한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진동하고 울리는 것에 대한 뇌의 총체적 해석과 편집이 바로 시간에 대한 감각이다. 인간은 하루, 한 시간, 일 분, 일 초, 한 달과 일 년을 구분할 수 있지만, 각각의 뇌 속에서 흘러가는 시간은 다르게 지각된다.
- 케빈 방정식 中 -
<마무리>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상황과 조건이 따라줘야 할까. 그리고 이 모든게 충족된다 해도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우리는 그 이상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의문들이다.
하나의 대상 또는 개체를 향한 애정이 깊다거나 서로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그 존재를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는 것조차 불가능한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나의 관점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이해하려할 뿐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소설이었다.
서로 간에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끝내 서로를 사랑하고 마는 관계의 애틋함은 오히려 아름답고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 역시, 완독 후에도 계속해서 곱씹어 보게 된다.
'RE : VIEW > 고전 & 현대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의 노래 - 김훈 / 줄거리 & 명대사 & 후기 (0) | 2022.08.11 |
---|---|
삼생삼세십리도화 - 당칠공자 / 줄거리 & 명대사 & 후기 (0) | 2022.07.14 |
마음 - 나쓰메 소세키 / 줄거리 & 명대사 & 후기 (0) | 2022.07.01 |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 파울로 코엘료 / 줄거리 & 구절 + 후기 (0) | 2022.06.30 |
달러구트 꿈 백화점 2 - 이미예 / 줄거리 & 명대사 + 후기 (0) | 2022.06.23 |
댓글